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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제29호-은총과 평화 가득한 세계 성지 순례 ⑥ 토리노

작성자: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

등록일: 2024-02-22 조회수: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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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과 평화 가득한 세계 성지 순례 



따뜻한 커피, 더 따뜻한 마음. 토리노 


글, 사진┃김원창 미카엘 



오랜 가톨릭의 역사만큼이나, 이탈리아는 긴 장화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수많은 성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 번 이탈리아를 순례하더라도 쉽게 찾아가기 힘든 성지도 많지요. 시칠리아와 몰타는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이니 예외로 치더라도, 파비아, 제노아, 볼로냐, 라벤나, 마노펠로, 소토 일 몬테, 로레토 그리고 산 조반니 로톤도 등등 성지가 갖고 있는 중요도에 비해 한국의 순례자들이 자주 찾지 못하는 곳들이 수두룩합니다.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토리노(Torino)도 그렇습니다. 여느 이탈리아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볼거리가 가득하고 어디를 가든 에스프레소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토리노는 앞다투어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도시 중에서도 손꼽히게 오래된 곳입니다. 기원전 218년에는 알프스를 넘은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했지요. 토리노는 기원후 65년에 있었던 대화재로 도시의 대부분이 불타는 아픔을 겪었고, 이후에는 동고트족, 랑고바르드족, 프랑크 왕국, 사보이아 공국, 나폴레옹의 프랑스, 샤르데냐 왕국 등이 지배했던 땅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작은 도시국가로 나누어졌던 이탈리아 반도를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자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보이아 가문은 토리노를 잠시나마 수도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가 독일과 손잡고 일으킨 제2차 세계 대전, 토리노는 전쟁 무기를 생산하면서 유럽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란차, 크라이슬러 등을 소유한 그 유명한 자동차 회사 FIAT( 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의 본사가 위치해 있어 1950~60년대에 이탈리아 전체를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유명한 라바짜(Lavaz-za) 커피가 시작된 도시이기도 하죠. 토리노를 다녀오신 분이라면 라바짜 커피의 깊은 맛을 절대 잊을 수 없으실 거예요. 라바짜 커피 1호점에서는 고작 1유로에 불과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음미하기 위해 일부러 토리노를 찾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니까요. 본점에 가지 못하더라도, 토리노 광장에 있는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고 특유의 LAVAZZA 엠블럼이 새겨진 Demitazza(프랑스어 어원으로 ‘반 잔’이라는 뜻을 지닌 에스프레소 잔. 커피 양이 적어 쉽게 식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껍게 만든다)를 손에 들고 한 입 마셔보는 것만으로도 토리노 여행의 절반은 성공하신 셈이겠지요. 축구를 좋아하신다면, 토리노를 근거지로 하는 세계적인 축구클럽 유벤투스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관광 포인트를 지닌 토리노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이곳은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수의’가 떠오르는 도시입니다. 토리노에서 유일한 르네상스 양식의 15세기 건축물 토리노의 주교좌 성당(Duo-mo di Torino)은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다른 주교좌 성당에 비해 크거나 아름답진 않지만 제대 오른쪽 경당(Cappella della Sacra Sindone)에 보관된 길이 4m×1m 가량의 아마포 천조각 때문에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 아마포는 예수님의 수의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가 이곳을 찾고 있지요. 교황청의 허락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의 과학적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아마포의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순례자에게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 수난하시고 죽임까지 당하신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입니다. 수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낼 마음을 먹고 토리노를 방문하는 순례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리노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성인이 활동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전세계 모든 이들이 친근한 표현으로 ‘보스코 신부님(돈 보스코)’이라고 부르는 성 요한 보스코(San Giovanni Bosco, 1815년 8월 16일~1888년 1월 31일), 조반니 멜키오레 보스코(Giovanni Melchiorre Bosco)가 바로 그분입니다.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며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셨던 성인께서는 그를 따랐던 수많은 청소년들이 부르던 것처럼 그저 돈 보스코라고 불리기를 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인께서는 토리노에서 30km 정도 떨어진 베키(Becchi)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돈 보스코가 두 돌도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 프란치스코가 갑자기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그의 가족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성인께서도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겨우 읽고 쓸 줄만 알았지요. 하지만 어머니 마르게리타(Margherita Oc-chiena)는 훌륭한 신앙인이셨습니다. 후일 ‘그리스도인으로 어머니인 이의 모범’이라고 칭송받는 그녀는, 특히 죽기 전에 “어린 요한을 잘 부탁한다”고 유언했던 남편의 말을 기억하며 막내였던 요한이 신앙심 깊은 사람으로 자라도록 힘썼습니다. 


어린 요한은 숙부의 집안일을 도우며 지냈는데,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숙부는 요한이 꿈꾸던 사제의 길을 여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죠. 결국 26세가 되던 해에 요한은 마침내 사제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한 큰 기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제품을 받은 아들에게 “너는 인간적으로는 내 아들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사제의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라. 오늘부터는 어머니인 나를 염려하지 말고, 네게 맡겨진 이들의 영혼을 위한 참된 목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젊은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나는 여러분을 위해 공부하고, 여러분을 위해 일하며, 여러분을 위해 살고, 여러분을 위해 나의 생명을 바칠 것입니다.”라고 늘 이야기했던 성인의 마음은 어쩌면 어머니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라 했지요. 토리노는 당시 유럽 최고의 공업도시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때문에 그만큼 사회의 어둠도 깊어져만 갔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 속에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아주 어린 아이들도 공장으로 끌려가 노동에 참여해야 했으며 그나마 열악한 일자리조차 얻지 못한 청소년들은 뒷골목으로 밀려나 폭력과 범죄의 나락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어린이를 그저 작은 어른, 또는 채 어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인간으로만 대했던 시절이었지요. 


성인께서는 특히 십대 아이들이 감옥에 다녀온 후에도 누구 하나 손을 내밀어주지 않아 다시 범죄에 빠지게 대성당되는 악순환에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당 마당을 내주셨습니다. “내 아이들아, 죄가 되지 않는 한 마음껏 뛰놀아라!” 성인께서는 더 나아가 엄숙하고 근엄한 사제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아이들과 함께 뛰놀며 놀이를 즐기셨습니다. 누구나 사랑을 받으면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과 불만으로 인해 아이들은 성당 마당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백여 명의 아이들을 품고 계셨던 성인은 커다란 모험을 하셨습니다. 술집 옆에 위치한 허름한 집 한 채를 겨우 얻어, 그 아이들을 위한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큰 위험에 처한 소년들과 출감 소년들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이곳에서 성인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일자리를 얻기 위한 기술과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청소년은 그 자체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라는 믿음에 따라 사랑과 자비 넘치는 공동체를 키워나가기 위해 살레시오 수도회(성인께서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을 매우 존경하셨지요), 살레시오 수녀회, 살레시오 평신도 제3회를 창설하셨습니다. 성인께서 선종하시기 전까지 이 청소년 공동체에서 1,000명이 넘는 사제가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토리노를 가로지르는 도라 리파리아(dora riparia) 강변에 위치한 발도코(valdocco)는 성인과 살레시오 활동의 시작점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해달라”며 하느님 품에 안기신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도움의 성모 마리아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Ausiliatrice)’을 비롯해, 성인의 온 생애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학교 곳곳을 꼭 순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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